하나님은 오늘날 처럼 거대한 기독교를 원하셨는가 ?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 :31~32 ).
겨자 씨의 비유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원칙을 상징한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밭은 세상을 상징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심으셨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작은 겨 자 식물은 3미터에서 5미터 정도 자란 답니다. 주님은 이 가장 작은 겨자 씨가 가장 큰 것이 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하셨다. 이전에 대다수의 성격 해석가들은 좋은 뜻으로 해석 했는데 빠른 시간 안에 교회가 아시아 전역에 퍼졌기 때문에 교회가 전도가 잘되며 각지에서 부흥이 일어난 것을 말씀 하신 것으로 해석했다.그러나 이러한 성경 해석은 비성경적이며 다만 인간적인 상상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일 온 세상이 개선될수 있다면 앞 구절에서 가라지를 언급 하거나 땅의 4분의 3이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각종 물고기 비유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겨자 씨의 비유를 설명해야 하는가 ? 창세기 1장 11절부터 1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모든 것이 각기 종류 대로 지어졌음을 볼 수 있다. 채소는 항상 채소이며 새는 항상 새 이고 원숭이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겨자 씨는 나무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다. 원래 교회는 가장 작고 가장 연약하며 거의 주목받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도록 정해졌다.
그러나 교회는 나무로 상징되는 거대한 세력의 기독교가 되어버렸다.
로마 천주교의 손아래서 교회는 많은 부끄러운 것들을 산출했다. 한 번의 명령에 따라서 하루 사이에 수만 명의 군사들이 침례를 받았다.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사람들은 4온스의 은 과 두 벌의 흰 옷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아 !교회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하늘의 새는 악한자 사탄을 상징한다. 로마 천주교는 그로 인해 사탄의 본부가 되어버렸고 개신교도 역시 크리스마스와 같은 일들에 있어서 천주교의 전철을 밟았는데 그것은 그 새가 로마 천주교로부터 개신교로 따라 들어간 것같다. 새들은 사단으로부터 온 죄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안에 있는 죄들은 사실상 온 세상의 죄들을 포함한다. 교회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죄가 무엇인가 ? 교회는 완전한 혼돈이라고 할수있는 바벨론이 되어버렸다. 사단은 가장 영리함으로 씨를 삼켜버렸다.( 마 13 : 3 ) 그러나 그는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전략을 바꾸어서 그 나무로 하여금 더 크게 자라게 하여 모든 새들이 거기에 깃들이게 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간판을 걸고서 사탄의 약을 파는 것과 같다.
주님은 교회에게 무엇을 정하셨는가 ? 요한 일서 3장1절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갈라디아서 6장 14절은 세상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며. 베드로전서 2장11절은 우리가 이방인이요. 나그네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정하신 교회는 너무나 작아서 심지어 세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은 살아 있는 동안은 하나의 길이요. 죽어 있을 때는 무덤에 불과하다.
실제로 교회는 어떻게 거대하게 되었는가 ? 즉 겨자씨가 어떻게 나무가 되었는가? 그것은 그 뿌리가 매우 깊게 땅속에 박혀서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이 교회가 자라는 것을 도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영광을 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는 상원 의원이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겨자씨는 거대하게 되는 것이다.
채소와 나무는 서로 다르다. 채소는 1년생인 반면에 나무는 다년생식물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 나그네와 같은 본성을 상실했다.
식물은 잎이 있지만 나무는 가지가 있다. 교회의 여러 사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수있다. 나물은 최소는 2 .3개월 내 죽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원래의 태도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교회가 창세기에 있는 원칙으로 돌아가 채소가 되기를 갈망하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회는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더욱이 그 교회는 순결함을 상실했고 세상으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이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이들의 위대함을 흠모하지 말고 우리의 작음을 보존해야 한다. 사울은 자신을 작다고 여겼으며 그 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다.( 삼상 9 : 21 )후에 그가 거대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로 돌이키셨다.( 삼상 15 : 30 ).하나님은 큰 그릇이 아닌 작은 그릇들을 찾고 계신다.( 삼상 10 : 21, 행 9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