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주의의 위험성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이적)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난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주님의죽음과부활)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8,39)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타락하고 음난한 종교인들은 순수한 말씀 보다는 표적을 더 중히 여기고 순전한 말씀을 믿지 못하나 표적은 잘믿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오순절 은사주의 집회 동영상을 보면 도저히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없는 기괴하고도 혐오스러운 광경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사도들은 여러곳에서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유혹을 저희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하심이니라(살후2:9)
십자가가 빠진 복음,곧 이 시대에 전해 지는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알아도 자기의 십자가는 무었인지 알지 못합니다.
오순절주의 순복음교회의 교인들이 70만입니다.
초기에 성령의 능력으로 방언하며 병고침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과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그날에 가서야 밝혀지겠지요, 그들의 열매가 어떠합니까?
의심스러운 성령의 역사와 기복주의 신앙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인도하고 부흥시킨 ㅈ목사의 비행은 참으로 한국기독교의 부끄러운 실상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열가지 표적과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한 표적과 기사는 역사상 전무 후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기사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십여년간 거칠고 험한 광야생활하는 동안에도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신발도 닳아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어떠했습니까?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장정들이 불신과 원망가운데서 모두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다 멸하셨으며"(유5)
표적과 기사는 사람들로 믿음을 갖게 못하고 따라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꺼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각종 은사가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따라 나뉘고 서로의 은사를 비교하며 다투고 만찬을 잘못행하여 징계받아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였고 간음죄와 여러가지 불의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젖으로 먹이고 밥을 먹이지 못하였습니다. 은사는 많이들 가지고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어린아이들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은사들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같은 것이며 더욱 더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하면서"13장을 기록하며 사랑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사랑이 온전한 것이며 그 완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여지리라 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 자신은 어떠합니까? 그의 사역초기에는 그의 앞치마나 손수건을 가지고도 병든 자를 고치고 악귀도 내어쫓았습니다.(행19:11,12)
그리고 독사에게 물려도 끄떡없었습니다.
바울은 초기에 성령의 능력으로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여러가지 은사를 많이 가지고 많은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말기사역에서는 자신의 병도 고침받지 못하였고 다른 제자들의 병도 고쳐 주지 못하였습니다
(고후12:7,갈4:14,15,딤전5:23,딤후4:20)
사도바울이 사역말기에 타락하여 그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까? 표적과 기사는 교회가 영적으로 어릴 적에 한시적으로 주어지고 나타나는 현상입니다.표적을 보고 믿는 신앙은 매우 낮은,유치한 신앙이며 위험한 것입니다. 표적으로 얻은 믿음은 그 표적과 능력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된믿음은 보지 못하고 믿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아야 믿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 의심 많은 도마는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믿었고 따라서 구원을 얻었습니다.하늘에 속한 기쁨,곧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경험하였고 하늘의 영광이
무엇인지도 조금 맛보았습니다.
많은 은사를 소유했던 바울이 일생동안 알기로 작정한 것은 오직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뿐이였습니다.(고전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의 십자가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주님의 인격이나 그분의 십자가에 대하여 아는 것이 너무나 미미하다는 것을
살아가면 갈수록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이것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사도 바울이 작정한 그것을 조금이나마 경험적으로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의 죽음으로 받을 때에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의 인격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 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0,11)